분양가·공사기간 맞추려 철근 뺐다

지하주차장 철근을 빼먹은 것으로 드러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15개 단지 대부분은 2019년 이후 착공에 들어가 2021년 전후 공사를 한 단지들로 1일 파악됐다.당시는 철강·시멘트 등 원자재값이 고공행진한 시기와 겹친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인건비가 급등, 건설 현장에서 인력난이 벌어졌을 때이기도 하다. 더욱이 분양가 상한제를 비롯해 각종 부동산 규제를 펴던 문재인 정권 시절이었다.건설원가를 높이는 각종 ‘악재’가 출현한 가운데 다중 하도급 체계와 같은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여전한 상태에서 아파트 철근이 누락되는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발생한 셈이다.국토교통부가 전날 발표한 LH의 ‘긴급안전점검 결과 미흡현황’에 따르면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15개 단지는 모두 2018~2021년 말 사업승인을 받았다. 착공은 모두 2019년 9월 이후에 시작됐다. 9개 단지는 이미 준공됐고 6개 단지는 아직 공사 중에 있다. 2020 ~2021년 즈음에 무량판 구조 주차장에 철근을 심는 공사가 이뤄졌다는 것인데, 왜 이때 무더기로 철근 누락이 발생했을까.누군가 조직적으로 ‘철근 빼돌리기’를 한 게 아니겠느냐는 세간의 의심과 다르게 LH는 이번 철근 누락이 공사비 절감 과정에서 빚어진 총체적 부실의 문제로 보고 있다. 단지별로 누락된 철근 비용을 합쳐도 1000만원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몰래 철근을 빼돌리는 수고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주차장 공사에 들어간 철근은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근이 아니라 기둥과 천장을 이어 주는 특수한 목적의 철근에 해당하기 때문에 철근을 빼돌린다 해도 다른 곳에 전용해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이에 선분양으로 거둬들인 대금에 맞춰 공사비 전체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설계·시공·감리 과정에서 ‘원칙과 감시의 눈’을 가렸을 여지가 크다고 건설·철강업계는 평가했다.철강값은 지난해까지 계속 오르던 추세로 공사가 한창이던 2021년엔 전 세계적으로 철강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t당 철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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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공사기간 맞추려 철근 뺐다
지하주차장 철근을 빼먹은 것으로 드러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15개 단지 대부분은 2019년 이후 착공에 들어가 2021년 전후 공사를 한 단지들로 1일 파악됐다.
당시는 철강·시멘트 등 원자재값이 고공행진한 시기와 겹친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인건비가 급등, 건설 현장에서 인력난이 벌어졌을 때이기도 하다. 더욱이 분양가 상한제를 비롯해 각종 부동산 규제를 펴던 문재인 정권 시절이었다.
건설원가를 높이는 각종 ‘악재’가 출현한 가운데 다중 하도급 체계와 같은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여전한 상태에서 아파트 철근이 누락되는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발생한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전날 발표한 LH의 ‘긴급안전점검 결과 미흡현황’에 따르면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15개 단지는 모두 2018~2021년 말 사업승인을 받았다. 착공은 모두 2019년 9월 이후에 시작됐다. 9개 단지는 이미 준공됐고 6개 단지는 아직 공사 중에 있다. 2020 ~2021년 즈음에 무량판 구조 주차장에 철근을 심는 공사가 이뤄졌다는 것인데, 왜 이때 무더기로 철근 누락이 발생했을까.누군가 조직적으로 ‘철근 빼돌리기’를 한 게 아니겠느냐는 세간의 의심과 다르게 LH는 이번 철근 누락이 공사비 절감 과정에서 빚어진 총체적 부실의 문제로 보고 있다. 단지별로 누락된 철근 비용을 합쳐도 1000만원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몰래 철근을 빼돌리는 수고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주차장 공사에 들어간 철근은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근이 아니라 기둥과 천장을 이어 주는 특수한 목적의 철근에 해당하기 때문에 철근을 빼돌린다 해도 다른 곳에 전용해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선분양으로 거둬들인 대금에 맞춰 공사비 전체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설계·시공·감리 과정에서 ‘원칙과 감시의 눈’을 가렸을 여지가 크다고 건설·철강업계는 평가했다.
철강값은 지난해까지 계속 오르던 추세로 공사가 한창이던 2021년엔 전 세계적으로 철강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t당 철근 가격은 2017년 60만원 수준에서 지난해 5월 110만원까지 치솟았다. 2021년 5월 철근 도매가격을 보면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해 t당 66만원에서 93만원으로 인상됐다.
이는 국내 철강 수급 애로로 이어졌다. 건설사들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는 공정부터 우선 진행하는 등 공사 지연 우려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공사비에서 보통 철근 자재비는 3% 내외를 차지하는데, 철강 가격 상승으로 2% 내외의 추가 상승이 전망되고 있었다. 철근에 더해 시멘트값 역시 상승 추세를 보였다.
급격하게 최저임금이 오른 시기와도 겹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건설 현장에서 인력 운영 시간을 줄이는 등의 업무 형태 변경이 이뤄졌다. 이는 현장 인력의 잦은 교체로 이어졌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한 공정이 이어지는 동안 한 팀이 일을 해야 하는데 철근을 심을 때의 팀과 마무리 작업을 할 때의 팀이 달라지면서 일의 연속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외국인 근로자의 건설업 유입도 늘었는데, 의사소통 문제로 이들에게 업무를 설명하는 일이 어려웠다는 증언도 있다.
공사비를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한 무량판 작업에 대한 현장 이해가 부족한 점도 사태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전날 이한준 LH 사장은 “무량판 도입으로 인건비를 포함해 보 철근, 거푸집 등 자재 절감 효과로 LH에서 총 751억원의 사업비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LH는 연간 6만 3000가구를 건설한다고 가정할 때 무량판 구조 적용으로 기존 라멘 구조 대비 이 정도의 사업비가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비용 문제만 과다하게 신경썼을 뿐 무량판 구조의 안전을 보장할 교육 등은 미비했던 결과가 이번 사태에서 나타났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삼풍백화점이 무량판 구조로 붕괴됐는데 30년이 지난 후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면서 “사고가 나면 교훈을 얻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시간만 지나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는 합리적인 건축 방식으로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무량판 구조는 기둥이 온전히 천장을 받쳐야 하므로 기둥과 슬래브를 연결하는 철근(전단보강근)이 하중을 견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설계 및 시공하는 데 있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이번에 철근이 빠진 아파트들에선 구조계산이나 상세도를 누락하는 등 부주의한 실수로 철근을 빼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보강 방식에 대한 구조기술사의 전문적 판단이 더해진 정밀안전진단을 통해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사기간 단축을 우대하는 관행에서 완벽한 시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공사기간을 단축했다고 포상하는 것이 아닌 완벽한 시공을 하고 민원이 없는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에 상을 줘야 한다. 지금은 골조가 문제지만 마감 하자에 대한 불만도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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